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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으로 시대적 난제를 해결하라”

 

 

성평등 국가의 모델… 프랑스의 성평등 국가 실험동수법과 동수 내각에 이은 ‘남녀평등최고회의’ 인류의 양성성에 기초한 동수의 철학

 

2013 여성신문의 약속 - 여성이 힘이다[저작권자 © 여성신문-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239호 [특집/기획] (2013-05-21)

김은경 / 세종리더십개발원장, 국민대 정치대학원 초빙교수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의 남녀 동수 내각은 시작에 불과했다. 2013년 1월, 프랑스 정부는 양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새로운 국가기구인 남녀평등최고회의(Haut Conseil à l'égalité entre les femmes et les hommes)를 출범시켰다. 이번 기구 개편은 역할과 기능에 있어 정치 분야 동수에 제한된 남녀동수감시소(Observatoire de la parité entre les femmes et les hommes)에 대한 재고를 통해 단행된 조치로, 기존의 여성폭력철폐국가위원회, 미디어의여성이미지위원회의 등 3개의 기구를 통합, 확대해 만든 국가기구다.

 

 

인류의 양성성에 기초한 남녀 동수의 철학

이름에서 드러나듯 여성과 남성 사이의 평등을 다루는 최고 수준의 심의기구인 남녀평등최고회의는 대통령령과 총리령으로 세부 규칙이 정해졌다. 총리 산하 기구인 남녀평등최고회의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여성의 권리 보호와 남녀 불평등한 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과 평가, 정책 제안이 주요 기능으로 설치됐으며, 지원 업무는 여성권리부에서 총괄 운영하고 있다. 법령에 따라 최고회의는 총리 또는 여성권리 관련 담당 부처의 모든 문제를 검토할 수 있으며, 맡겨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사안을 다룰 수 있다.

최고회의의 성격은 위원 구성을 통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사회당 소속 전직 하원의원인 다니엘르 보스케 의장을 포함해 총 60명, 남녀 동수로 구성된 최고회의는 11명의 상하원 및 지방의회 의원, 여성 관련 단체 대표 10명, 전직 장관, 의원, 노조, 변호사, 의사, 언론인 등 여성권리 분야 전문가 13인, 10명의 대학 교수 및 연구소의 학계 전문가, 법무, 교육, 고등교육연구, 직업훈련, 안전 등 관련 행정부처 담당 국장 7인, 상하원의 남녀기회평등 및 여성권리위원회 위원장, 경제사회환경회의 의장, 사회통합 및 남녀평등과여성권리 부처 간대표회의 간사 등 입법부 대표 8명으로 구성됐다. 성평등한 사회를 향한 대안 모색을 고려한 공식적·비공식적 권한을 총망라한 거버넌스 모델로 평가된다.

 

 

주요 임무로는 시민사회와의 협의, 여성권리 및 남녀평등 정책 관련 공공토론 주도를 비롯해 남녀평등 관련 공공정책 평가, 법률·규정이 미치는 영향 분석 및 평가, 유럽과 국제사회 남녀평등 관련 자료 연구 및 수집·확산, 제안서 및 의견서 작성과 총리에 대한 개혁안 제안 등이다. 임무 수행의 결과는 2년에 한 번 총리와 여성권리부 장관에게 보고서로 제출되며, 여성권리부 장관은 이를 의회에서 발표하도록 돼 있다. 선정된 주제에 대한 테마별 보고서도 작성한다. 성폭력위원회, 성역할고정관념철폐위원회, 여성권리및국제유럽관계위원회, 정치행정경제사회분야동수위원회, 여성건강재생산권리위원회 등 5개 위원회로 구성된다.

 

 

1999년 제정된 동수법을 비롯해 2012년 여성권리부 신설과 동수 내각, 그리고 2013년 남녀평등 국가기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경험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할당제가 아닌 남녀 반반의 산술적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근간은 무엇일까? 일련의 변화를 이끈 이론적 토대는 인류의 양성성에 대한 성찰이다. 여성은 할당을 통해 ‘자리’를 ‘배정받아야 할 사회적 범주가 아니며, 어디에나 존재하고 모든 계급 속에 있는 인류, 즉 인간 종의 절반이다. 동수의 철학은 인류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된다는 사물의 이치에 따른 본래 위치를 확보하는 일이라는 결론이다.

 

 

시민사회와 의회에서 출발해 국가적 차원의 대논쟁을 거쳐 정착된 동수법을 통해 프랑스의 지방의회는 남녀 반반으로 이루어져 지역을 이끌고 있다.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약속한 동수 내각이 현실이 되어 구성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책을 남녀가 더불어 결정하고 있다. 여성 관련 기구 4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권리만을 다루는 독립 부서를 탄생시켜 남녀 불평등한 정책들을 점검하고 평등한 세상을 위한 대안들을 모색하고자 남녀 동수 위원으로 이뤄진 최고위급의 자문기구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 같은 일련의 변화들이 여유 있는 자들의 여유로운 선택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세대 동안 이어진 프랑스의 선택은 결코 여유의 산물이 아니다. 주변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았던 여성의 지위, 출산율, 고령화 등으로 인한 사회보장제도의 위기 등 어떤 나라보다도 강하게 불어닥친 시대적 난제가 낳은 창의의 산물이다. 앞서가는 선택이 아닌 전례 없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위기 대응의 산물에 더 가깝다.

 

 

여성권리부 홈페이지 주제는 ‘365일 3·8 세계 여성의 날’

남녀가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진부한 주제일 수 없다. 성평등이 이미 다 이루어졌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권리부 홈페이지의 캠페인 주제가 눈에 들어온다. ‘365일 3·8 세계 여성의 날(le 8 mars, c'est toute l'année)’…. 100년의 성과가 고작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한때는 그리고 여전히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여성인력을 활용해야 한다고들 했다. 여성파워를 활용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참여는 국가경쟁력이나 선진국 진입의 문제가 아닌 일상적인 삶의 차별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문제다. 생존의 문제가 더 이상 경제논리로 비하되고 왜곡돼서는 안 된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 성폭력과 가정폭력, 청년 실업과 청소년 자살, 환경 문제와 남북문제 등 우리 사회야말로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동수의 철학에 기초한 국정 운영은 이 모든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선의 확보이자 창의적 대안 모색의 출발점이지, 겉 보기에 그럴 듯한 민심 잡기용 선거 공약이 아님을 분명히해야 한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사실이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프랑스의 경험이 전하는 교훈은 분명하다. 성평등이 기본 가치가 되는 국가 운영은 최고 권력자의 정치적 의지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된 후 처음 맞이하는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식 개회사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여성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존엄을 지키는 일은 프랑스 공화국이 지닌 의무이자 나의 의무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더 이상 여성에 대한 폭력, 차별, 불평등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억하는 오늘만의 일도 아니고, 혹은 1년 동안의 과제도 아닌 5년 임기 동안 모든 정부 정책의 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부처에 남녀평등 정책 관련 고위공무원을 임명했고, 여성 후보 공천 대신 보조금 삭감을 선택한 정당에 대해서도 동수법 적용을 적극 주장함은 물론, 그 어떤 분야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이어야 할 문화계와 방송계의 저조한 여성 참여도 개혁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집권 10개월의 평가를 통해 그는 정부 차원에서 성희롱 척결, 동일가치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 낙태, 특히 미성년자의 낙태 허용, 전통적인 성역할로 인한 차별 철폐와 교육, 훈련에서의 남녀평등 실현 등 4가지 기본 정책을 중심으로 모든 정책이 이루어지도록 각 부처에 주문했다. 더불어 정부가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고, 여전히 다른 나라들의 모델이 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여성경제활동률의 증가와 유럽 최고 수준의 출산율 등 두 가지 분야에서 만큼은 자랑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자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산상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보육정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프랑스가 분쟁 지역인 말리의 군사 개입을 주도한 이유 역시 야만적인 억압으로부터 희생당하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덧붙인 대목이다. 최고 지도자로서 올랑드 대통령은 성평등, 성주류화, 성인지 예산 등 성인지 정책 전반에 관한 이론적 토대와 정당성, 그동안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고 있었다. 정치는 현실의 거울이 돼야 한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정책이 되도록 정치와 행정은 책임져야 한다.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을 알아야 하며, 앎은 관찰에서 시작되고, 관찰은 관심의 결과다.

 

 

결국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관심이 없기에 관찰하지 않으며, 관찰이 없기에 알지 못하며, 앎이 없기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인가? 욕성기의자 선치기지 치지재격물(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한국 사회가 당면한 작금의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뜻을 세워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 뜻의 핵심 가치가 성평등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거룩한 뜻을 세워 정치에 입문한 공식적 권한자들에게 다시 권하고픈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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